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Avram Noam Chomsky세계적인 언어학자, 작가, 정치평론가, 사회운동가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사람이다. 1928년 12월 7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 가정의 2세로 태어난 노암 촘스키는 역사 언어학자이자 저명한 히브리어 학자였던 아버지 윌리엄 촘스키의 영향으로 언어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촘스키는 로 촘스키는 존 듀이의 교육 이념을 따르는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오크 레인 컨트리 데이 초등학교에서 창조적인 사고를 키웠지만, 대학 진학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경쟁적인 필라델피아 센트럴 고등학교에서는 의욕을 상실하고 불행함을 경험해야 했다.

이후에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교에 진학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언어학과 수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 대학교 특별연구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의 기초 연구를 수행했다. 펜실베니아 대학 시절 언어학 교수인 젤리그 해리스의 영향으로 언어학을 공부하게 된 촘스키는 생성문법 이론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의 저술들은 1960년대 이후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왕성한 저술활동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강의 활동을 했다.

그는 1955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변형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강의를 시작하였고 1960년에는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변형생성문법’이라는 새로운 언어학 이론으로 학계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의 수많은 논문들은 주요 연구 대상이 되었다. 1976년에는 MIT 석좌 교수가 되었으며 그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오늘날 단순히 한명의 언어학자일 뿐만 아니라 숱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발언하며 세계 여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 되고 있다.

촘스키의 삶은 언어학자와 실천적 정치평론가라는 두 개의 기둥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언어학자로서의 그는 구조주의적 언어학을 비판하고 변형생성문법이라는 새로운 언어분석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언어를 인간이 보편적으로 타고난 능력의 결과로 간주하였으며, 자신의 언어관이 17세기 합리주의자들의 사상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언어학에서의 그의 주요 저작으로는 『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Reflections on Language』『Lectures on Government and Binding』『Barriers』 등이 있으며 이들을 통해 명시성과 엄밀성에 기초한 과학적 언어분석을 맛볼 수 있다.

한편 그는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문제에서의 강대국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횡포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며 고발함으로써 ‘세계의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비판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주류 언론과 지식인의 유착에 의해 전개되고 있음에 특히 주목하고 있으며 그 본질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의 비판은 이제 신자유주의에 토대를 둔 오늘의 세계질서에 대한 비판으로 연장되고 있다. 관련서로『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숙명의 트라이앵글』『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등이 있다.

1956년(29세) MIT 대학 부교수, 1959년(32세) 정교수, 1964년(37세) 석좌교수가 되었으며, 1974년(47세)에는 ‘인스티튜트 프로페서’(하나의 독립된 학문기관에 상응하는 존재)가 된 그는 지금까지 1천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7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어릴 때부터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그는 언어학도로만 머물지 않고 1960년대부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1966년『뉴욕 타임스』에 기고한「지식인의 책무」를 통해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기고문은 그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칭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로서,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촘스키는 80세가 넘은 지금도 진실을 향한 지적 성찰은 나이를 먹을 줄 모른다. 촘스키는, 지배권력의 선전에 세뇌되어 왜곡된 진실을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적인 자기 방어법을 제공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제시한다. 타락과 탐욕으로 범벅된 세계 지배권력의 심장을 정면으로 겨누는 촘스키의 투쟁은 종종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도둑맞고 사는 약자’들의 열렬하고도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해가고 있다.

신도 버린 사람들

닿는 것조차, 같이 숨쉬는 것조차 금지된 불가촉천민의 위대한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림자만 닿아도 오염되는 불가촉천민에서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지도자가 된 ‘나렌드라 자다브’가
들려주는 인도 역사상 가장 뜨겁고 가장 애절한 순간의 기록!

인간이라는 사실이 불행한 사람들, 개ㆍ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 신이 내린 은총은 오직 ‘구걸할 권리’뿐인 사람들 불가촉천민! 태어난 신분을 절대 바꿀 수 없는 인도의 절대적 신분제도의 족쇄를 풀어버림으로써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나렌드라 자다브의 애절하고 위대한 이야기!
‘인도의 살아 있는 영웅’이라 불리는 나렌드라 자다브는 불가촉천민(달리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인도중앙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도 푸네 대학 총장 자리에 올랐다. 세계의 언론은 그를 인도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기 대통령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신의 운명을 온몸으로 개척한 자다브와 그의 부모의 삶은 이 시대 최고의 성공스토리이자 한 편의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다. 인도에서 12년 연속 베스트셀러! 소설보다 재미있고 역사보다 섬세한 감동의 실화! 나렌드라 자다브와 그의 가족이 겪어낸 투쟁의 스토리를 통해 인도의 역사, 종교, 신분, 생활상 등 인도의 모든 것을 만난다!

인간이면서 인간답게 살지 못했던 1억 7천만 불가촉천민의 위대한 도전기!
“내 운명에 손대지 마라. 내 운명은 신이 아니라 내가 만든다.”

오늘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인도인이고, 인도인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불가촉천민, 즉 달리트다. 이들은 힌두 카스트제도의 맨 밑바닥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다.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교과서에서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배울 때도 네 가지 신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만 알려 줄 뿐, 그 카스트 안에 속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인도의 15%, 1억 7천만 명이나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1억 7천만 명이라는 숫자는 미국 인구의 절반도 넘는 숫자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신분을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이나 귀족), 바이샤(상인), 수드라(피정복민 및 노예, 천민)로 이루어진다. ‘아웃카스트’인 ‘불가촉천민’은 이 네 가지 신분 계급 안에 속하지 못한다. 불가촉천민은 계급 제도 밖의 구성원으로서, 인간 사회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지 못하고(천민인 수드라 계급에도 속하지 못한다) 전통적으로 가장 비천하다고 여기는 직업에 종사해 왔다. 오물 수거, 시체 처리, 가죽 가공, 세탁, 마을의 소식을 알리는 일 등이 주로 그들의 몫이었다. ‘불가촉천민’이란 단어는, ‘이들과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인도인들의 생각이 담겨 있다.
3500년이나 묵은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너무나 견고해서 그 신분의 벽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인도에서는 서로의 이름만 들어도 그들이 속한 계급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다. 1955년 불가촉천민법에 제정되어 공식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종교적ㆍ사회적ㆍ직업적 차별을 금하고 있지만 실상 이 법의 보호를 받는 달리트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에서 간디와 함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암베드카르(B.R. Ambedkar)는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운 좋게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1927년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마실 물도 얻어먹을 수 없는 이 땅을 조국이라 부르겠는가’라며 투쟁을 벌였고 여성과 천민의 자유와 권익을 헌법에 명문화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천민 1만 명을 이끌고 상수원 저수지로 몰려가 물을 마심으로써 ‘천민의 물 마실 권리’를 세상에 선포했으며, 50만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신분제의 근원인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하기도 하였다. 1956년 이루어진 이 개종식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단일 개종식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가촉천민은 사원에 들어가 신에게 기도를 드릴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그림자가 사원에 드리워져 신성한 곳이 더렵혀진다고 믿고 있었다. 이후에도 신분차별과 힌두사원 출입제한에 반발하는 불가촉천민들의 개종이 뒤를 이었다.

암베드카르를 불가촉천민의 아버지였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불가촉천민은 자신들의 운명을 전생의 죗값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비천한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세에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천한 신분과 핍박, 굴욕을 견뎌냈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교육과 세력, 민주주의를 통한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고 불가촉천민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를 열렬히 추종하던 한 남자는 자식을 교육시키기에 이르렀고, 그 교육의 혜택을 입은 어린 소년은 훗날 인도를 이끌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 소년이 바로 《신도 버린 사람들》의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이다.
지금껏 불가촉천민에게는 목소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신도 버린 사람들》, 이 위대한 기록은 지금까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결과물이다. 목소리가 없던 이들에게 안겨준 목소리!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운 가족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나간 나렌드라 자다브는 신이 정해주지 않은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써낸 것이다.

인도를 넘어 전세계인의 가슴을 사로잡다!
눈물과 고통을 딛고 이루어낸 가슴벅찬 자유와 희망 이야기!

《신도 버린 사람들》에는 네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나렌드라 자다브의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 그리고 나렌드라 자다브 자신과 자다브의 딸까지. 다무와 소누의 회상과 대화는 읽는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인도의 사회상, 생활상, 계급제도, 그리고 암베드카르를 주축으로 한 투쟁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진보적인 다무와 전통적인 소누 사이의 의견차이를 통해 불가촉천민 안에서도 신분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자들과 인간의 존엄성을 외치는 자들로 분분함을 알 수 있다.
‘다무’의 인생이, 나아가 그의 아들 나렌드라 자다브의 인생이 바뀐 순간은 다무가 자신의 신분과 인도의 신분제도에 항거한 날부터 시작된다.
뭄바이에서 살던 ‘다무’는 불가촉천민이 행해야 하는 ‘예스카르’ 의무를 실행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밤새 굶어가며 저수지에 빠진 시체를 지키고, 열심히 일한 대가로 구걸할 권리를 겨우 얻는 등,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항거하다 몰매를 맞는다. 뭄바이에서는 일도, 돈도, 희망도 없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다시 뭄바이로 향한다. 그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인간답게 살기를 원했다. 뭄바이로 향하는 ‘다무’와 ‘소누’는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자긍심을 지키겠다는 생각만이 있었다.
부모의 깨어있는 의식 덕분에 나렌드라 자다브와 그의 형제들은 어렸을 적부터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불가촉천민은 그동안 ‘감히’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암베드카르 박사는 “부모는 자녀들을 교육함으로써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나렌드라 자다브는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신성한 언어이기 때문에’ 천민들은 배울 수 없었던 산스크리트어 시험에서도 모든 상층 카스트 아이들을 제쳤다. 어떤 교사는 불가촉천민이 공부를 잘 하는 이 나라 교육 제도가 의심스럽다며 한탄했다고도 한다. 교사조차도 차별의식 속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항상 1등을 하면서도 상층 카스트보다 잘했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에게 혼이 날까봐 나서지 못했다.
그는 ‘내 운명은 내가 선택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바로 교육이었다’고 말한다. 나렌드라 자다브는 자신의 부모세대가 투쟁했던 것처럼 자신 역시 투쟁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중앙은행 총재가 되어 불가촉천민이 사인한 돈이 인도의 전역에 뿌려지고, 나아가 대통령이 되어 보다 현실적으로 불평등 사회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인도의 살아있는 영웅, 이 전설적인 이야기는 《신도 버린 사람들》 그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이혼을 한 부인은 두통이 심해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녔지만 별다른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경과 의사의 진단을 받아 보기로 했다. 부인은 현재 어머니와 잘 지내고 있으며, 어머니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따금 부인의 딸을 때린다. 물론 잘못을 했을 때 손을 댄다. 그러나 부인은 어떤 불평도 하지 않는다. 부인은 딸아이가 할머니를 좋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혹시 아이를 다루는 어머니의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은 아닌지 의사가 묻는다. 그러자 부인은 “그럴 리가요. 어머닌 지금껏 저희를 보살펴 주고 계신 걸요.”라고 대답한다. 부인은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런데 얼마 후 어머니가 먼 곳으로 여행을 간다. 그러자 부인은 계속되던 두통이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어머니에게 화가 나는 것은 아닙니까?” 의사의 질문은 분명 말도 안 되는 것이기에 딱 부러지게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그 질문은 계속 부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항상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데 화가 난다니 당치도 않아.’하고 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부인의 말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의사의 질문은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지금껏 갖고 있던 확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이 부인의 삶에 새로운 출발점이 된 것이다. 이처럼 지금 생각하는 바로는 분명히 잘못된 말인데도 왠지 마음속에 남아 맴도는 말이 있다면 이는 자신의 마음을 밝혀 줄 열쇠가 될 것이다.(92~94쪽)

4부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라(99쪽)에서는 유아적 욕구와 노이로제의 연관성을 통해 스스로 노이로제와 억압된 의존욕구를 진단할 수 있게 한다.
1~4부를 통해 자기 안에 억압된 의존욕구를 발견했다면, 5~7부는 그렇게 깨닫게 된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보듬는 장이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낼 때 비로소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친밀함이다.
마음속의 유치한 바람을 숨기지 않을 때 상대는 나를 믿어 준다. 유치한 나를 숨기고 짐짓 성숙한 어른인 척하면 상대는 나를 불신하게 된다. 상대의 신용을 얻으려 한 행동으로 오히려 믿음을 잃게 되는 것이다.(5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 142쪽)

따라서 훌륭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버려야만 한다. 물론 훌륭하고 좋은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 매달려 있는 이미지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훌륭한 자신’이라는 이미지를 버린다고 바람직하지 못한 내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강한 나, 결단력 있는 나, 믿음직스런 나, 사랑할 줄 아는 나, 행동력 있는 나, 도전하는 나, 자신감 넘치는 내가 되는 것이다.(6부 자연스러운 감정이 당신을 되살린다, 189쪽)

애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자신의 마음을 소홀히 다루는 것은 알코올중독자가 몸을 소중히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점을 깨달은 사람은 먼저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자신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진다는 뜻이다. 다정한 어머니가 나를 대하듯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일이다. 스스로 이해자가 되고 보호자가 되는 일이다. 절대 자기 자신에게 비판적이어선 안 된다.(7부 모든 일은 자신을 소중히 하는 데서 시작된다, 212쪽)

마음 깊숙한 곳에 억압돼 있는 ‘의존성’을 깨닫고 거짓 삶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인생의 문이 열린다.

저자가 말하는 치유책은 간단하다. ‘내 안에 숨겨진 의존성과 대면하라는 것.’ 내 안에 충족되지 못한 의존욕구가 있으며,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은 해소될 수 있다.

유아적 욕구를 충족하기는커녕 포기하도록 강요받은 사람은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다.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자기 정체성이 불확실해졌으며 자기 충족감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부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받아들여졌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비 오는 날이 나쁜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데도 맑게 개 있다고 믿는 점이 마음을 병들게 한다.(63쪽)

“어른이 된 후에 남에게 의존적이어선 안 된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 말에 확신을 갖고 있다. 이 말은 어른이 되기 전에 의존욕구를 충족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의존적인 어른이 되어 버렸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비 오는 날이 싫다고 아무리 불평해 본들 비가 그치겠는가. 의존적이지 않은 어른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의존욕구가 이미 자리하고 있다면 이를 자각해야 한다. 의존욕구를 갖고 있는데도 전혀 그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것은 최악이라 할 수 있다.(68쪽)

어릴 적 어리광 부리고 싶은 유아적 애정욕구를 충족한 사람이라면 삶은 물론 괴로울 때도 있지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지는 않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삶은 힘들거나 즐겁기는 해도 어떻게 살면 좋을지 그 방향이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없다. (…) 마음이 충만한 자는 삶의 방향이 되는 지표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이 책을 읽고 자기 내면의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맺는 글 중에서)

육일약국 갑시다

매출 200배 성장의 비밀, 하나
어제와 같은 오늘은 부끄러워하라
군대를 제대한 후,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대학 졸업장뿐이었다. 6백만 원의 빚으로 시작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4.5평의 약국. 하지만 ‘단 하루를 살더라도 어제 같은 오늘을 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매일 매일을 새롭게 바꿔 나갔다.
발전된 내일을 위해서 그가 택한 방법은 ‘비법 전수 받기’. 전국의 유명 약국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성공 노하 우를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2백여 가지의 주관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겠다’는 의지야 말로,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매출 200배 성장의 비밀, 둘
상대가 기대하는 것 보다 1.5배 이상 친절하라
4.5평의 약국마저 빚으로 시작해야 할 만큼 넉넉지 못한 상황이었다. 사회 초년병에, 약국 경영도 처음이었던 그. 아는 것이 부족하니 고객에게 나눠 줄 지식이 없었고, 가진 것이 없으니 물질적으로는 더욱 나눌 것이 없 었다. 당시 그가 고객들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친절과 정성’뿐.
이 과정을 통해 누구나 베풀 수 있는 정도의 친절, 즉 경쟁 업체가 베푸는 친절과 같은 양으로는 절대로 상대 를 감동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상대방이 체감하지 못하는 정도의 친절은 친절이 아니라는 김성오 대표. ‘손님이 기대하는 것보다, 1.5배 이상 친절’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출 200배 성장의 비밀, 셋
적극적으로 나를 알리고, 나를 팔아라
아무리 뛰어난 진주라 해도 조개 속에 갇혀 있으면 그 가치를 평가 받지 못한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 다’는 옛말처럼, 나를 알리기 위해서, 관심을 끌기 위해서 시장에 자신을 팔아야 한다. 저자는 적극적인 아이 만이 물과 콧물이 범벅된 떡 이라도 입에 넣을 수 있다며, 자신의 욕구를 알리고 쟁취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 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칼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매출 200배 성장의 비밀, 넷
실패, 그것은 경험이자 성공의 밑거름이다
새가 날기를 무서워하면 둥지를 떠날 수 없고, 물고기가 헤엄치기를 무서워하면 드넓은 바다를 볼 수가 없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작은 성공을 거듭하다보면 큰 성공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문제는 성 공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매일매일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것.
저자는 큰 도전이 두렵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있다. 먼저 자신을 옭아매는 게으름, 나태함과 싸 워 성실함과 친절, 노력과 열정으로 습관을 바꾸라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이 훔쳐갈 수 없는 자신만의 든든 한 성공 자산이 된다. 한두 번 실패 했다고 해서 절망할 것은 없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자 성공의 밑 거름이기 때문이다.

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큰 원칙을 제시하는 위인의 한마디

살아가며 자신의 원칙이 흔들리는 것을 종종 경험할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고, 끝없는 절망만 주위를 감싸고 있다. 그럴 때 이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쳐보면, “we are all something, but none of us are everything.-모두가 소중한 존재이다. 어느 누구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블레즈 파스칼의 말이 조심스레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치의 탄압으로 은든 생활을 한 소녀 안네 프랑크는 그 어두운 공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노래했다.
“근심이 많고,외롭고 불행한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최고의 비법은 혼자서 조용히 하늘과 자연과 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곳에서만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신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를 바란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미지의 축복에 감사하라(Give thanks unknown blessings already on their way).”라는 아메리카 원주민 속담은 절망적일 때 어떻게 희망을 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작은 힌트가 된다.
꿈이 있는 사람들은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 이 책은 꿈을 꾸게 해준다. 그리고 독선으로 치닫던 나를 인류의 오랜 지혜에 귀를 기울이게 해준다. 시간에 의해 검증된 것이니만큼 그것은 분명 진리를 말하고 있다. 지금 당신이 마음의 키를 잃었다면 이 책을 돛대 삼고 삿대 삼아 인생의 뱃길을 노저어가기 바란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만난 한 줄의 글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진정한 세계인으로 살아온 문선명 총재의 감동의 드라마!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을 넘어 미국과 중동, 러시아와 남미에까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고난과 승리의 대장정! 통일교 문선명 총재는 우리 민족, 아니 전 세계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바로 그 현장에서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평화의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었고,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던 그의 삶은 바로 온 인류가 겪어야 했던 고난 바로 그 자체였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 그리고 최근의 이라크 사태까지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의 한복판에서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진정한 세계평화를 일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한 인간의 고난과 승리의 일대기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대한민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옥고, 평화를 설파하기 위해 갔던 곳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수차례, 어떤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오직 평화를 위한 길을 가라는 하늘의 뜻을 믿으며 평생 사랑과 평화의 길을 걸어온 그의 일생을 진솔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문선명 총재가 아흔이 넘어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진정한 자기 고백이자 내면의 기도이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구촌의 화약고라는 팔레스타인 지역과 소련의 크레믈린까지 직접 뛰어들어가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면서 세계평화의 다리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고, 때로는 기아로 허덕이는 제3세계 국가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파라과이의 오지까지 들어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았으며, 지금도 유니버셜 발레단과 같은 문화사업에서 환경운동에까지 힘쓰며 전 세계 방방곡곡을 평화와 사랑의 손길로 보듬고 있는 문선명 총재,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이 책을 통해 최초로 세상에 공개된다!

“나에게 삶은 어느 누구와도 의논할 수 없는 고독한 노정이었습니다.
이제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내 마음 속의 폭풍 같은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

세계를 무대로 사랑과 평화를 일구어온 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처음으로 밝히는 90생애의 진솔한 이야기! 끝없는 박해와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인류 행복의 길을 개척해온 한 인간의 눈물과 회한, 꿈과 비전, 열정과 인류애!

나는 평생을 평화를 위한 일에 몸 바쳐 왔습니다. 평화라는 말만 떠올리면 지금도 목이 메어 눈물이 쏟아집니다. 세계가 하나 되어 평화를 누리는 날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평화란 그런 것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말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그리워하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에서 『신화는 없다』(1995)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1998) 『아름다운 원칙』(1989)까지, 이 시대 진정한 거물들의 삶과 인생, 철학과 비전을 생생하게 그려냈던 김영사가 폭풍 같은 한 세기를 보낸 또 한 명의 삶을 조명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을 넘어 미국과 중동, 러시아와 남미에까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3년의 기획기간을 거쳐 2년 여의 기간 동안 집필과 탈고, 거듭된 원고 수정 작업 끝에 출간된 이 책은 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 그리고 최근의 이라크 사태까지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의 한복판에서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진정한 세계평화를 일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한 인간의 고난과 승리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만큼 문선명 총재는 우리 민족, 아니 전 세계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바로 그 현장에서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평화의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었고,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던 그의 삶은 바로 온 인류가 겪어야 했던 고난 바로 그 자체였다.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대한민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옥고, 평화를 설파하기 위해 갔던 곳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수차례, 어떤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오직 평화를 위한 길을 가라는 하늘의 뜻을 믿으며 평생 사랑과 평화의 길을 걸어온 그의 일생을 진솔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문선명 총재가 아흔이 넘어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진정한 자기 고백이자 내면의 기도이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구촌의 화약고라는 팔레스타인 지역과 소련의 크레믈린까지 직접 뛰어들어가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면서 세계평화의 다리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고, 때로는 기아로 허덕이는 제3세계 국가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파라과이의 오지까지 들어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았으며, 지금도 유니버셜 발레단과 같은 문화사업에서 환경운동에까지 힘쓰며 전 세계 방방곡곡을 평화와 사랑의 손길로 보듬고 있는 문선명 총재,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이 책을 통해 최초로 세상에 공개된다!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진정한 세계인으로 살아온 문선명 총재의 감동의 드라마
우직한 시골 소년이 하나님을 만나 평화의 세계를 알기까지

하나님은 왜 나를 불렀을까요? 아흔이 된 지금도 날마다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가를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나를 선택하셨을까요? 외모가 잘나거나 인격이 훌륭하거나 신념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고집불통에다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내게서 취하실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었을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마음을 갖고 살며 고난을 당할 때에도 사랑의 칼로 고통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시골 소년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지독하게 하나님의 사랑에만 목을 매고 사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문선명 총재가 하나님의 뜻을 직접 들은 것은 열여섯 되던 해 부활절 전야였다. 1920년 일제 식민치하에서 태어난 그가 목격한 민족의 현실은 처참했다. 더군다나 세계적으로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전쟁의 소용돌이와 그 속에서 계속되는 인간의 고통,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은 그를 더욱 깊은 혼란에 빠뜨렸다. 목사였던 셋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집안 모두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에 대한 답을 찾고자 밤낮으로 기도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날 그의 눈앞에 나타난 예수님은 고통 받는 인류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에게 예수님의 현현은 하나의 해답이었고 그날 이후 그는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뜻길을 가게 된다. 한 겨울에도 방 안에 불 한번 지피지 않고 전차 값이 아까워 흑석동에서 종로까지 걸어다니면서도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주어야 마음이 편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다가라도 남들 도와줘야 직성이 풀리던 고집쟁이 문선명 총재는 그렇게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 후로 그의 바람은 오직 하나였다. 세상을 겹겹이 에워싼 담장과 울타리를 깨끗이 헐어버리고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 종교의 담장을 허물고 인종의 울타리를 넘어서 부자와 빈자의 틈을 메운 뒤 배고픈 사람도 없고 눈물 흘리는 사람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의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그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과 박해 앞에서도 뜻을 굽힐 수 없었다. 서울과 도쿄에서 유학을 하면서 그의 이런 의지는 점점 더 굳어졌다. 서울에서는 한강 다리 밑에서 거지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했고, 도쿄 유학 시절에는 조선소에서 막노동을 하며 학비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나가와의 빈민굴에서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며 노동자 중의 노동자,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가 이렇게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앞으로 겪게 될 고난의 시작이었다.

“이단은 없다!”
교파 없는 교회, 교회 아닌 교회를 꿈꾸며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는데 욕먹은 만큼 다 살려면 나는 아직도 백 년은 더 살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밥으로 채운 배가 아니라 욕으로 채운 배가 남들보다 몇 배는 될 테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사람입니다. 평양에 가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나를 그렇게 반대하고 돌을 던지던 기성교회가 부산에서도 역시 나를 반대했습니다. 교회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시시콜콜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내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였습니다. 아니 내 이름 문선명은 이단, 사이비와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이단이니 사이비니 하는 접두사 없이 그냥 이름만으로 불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광복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달랑 성경책 하나만을 들고 평양으로 올라가 교회의 문을 열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교회였지만 조금씩 소문이 퍼지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울과 동경에서 유학을 하면서 수백 번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밤을 새우며 눈물과 땀으로 기도에 매진한 결과 얻게 된 그의 해답과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교인들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위기감을 느낀 기성교회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급기야 그들의 고발로 흥남감옥에 투옥된 그는 살을 에는 흥남의 추위, 견디기 힘들 정도로 혹독한 강제노역과 굶주림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강철처럼 더욱 확고한 믿음을 다진다.
2년 8개월의 투옥생활 끝에 6. 25전쟁과 함께 풀려난 그는 부산 피난 시절을 거쳐 서울 장충동에 자리를 잡고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란 간판을 건다. ‘세계기독교’는 동서고금에 걸친 기독교 전부를 의미하고, ‘통일’은 앞으로 나아갈 목적성, 그리고 ‘신령’은 부자관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영육계의 조화를 암시한 표현이었다. 특히 통일은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문 총재의 이상이었다. 그렇게 어떤 교파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고 또 다른 교파를 만들 생각 없이 시작된 문 총재의 교회에 대한 기성교회의 반발이 다시 시작되었다.
대학가 전도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이화여대와 연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교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대학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마침내 연대와 이대는 문선명 총재를 따르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퇴학 및 퇴직시키는 학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일이 일파만파 퍼지는 것을 걱정하며 교회로 찾아오는 학생들을 말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기숙사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으면 담을 넘는 것도 예사였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문 총재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지도자로 매도되었고 문 총재의 서울교회도 사이비 종교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박혔으며 기성교회의 반발은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결국 1955년 7월 13일 문 총재는 병역기피라는 죄목으로 다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다. 또다시 쇠고랑을 찼지만 문 총재에게 이것은 해방의 세계를 향해 도약하기 위한 발판일 뿐, 그에게 좌절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문 총재가 생각하는 교파 없는 교회를 원했다. 참된 종교란 자기 교단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를 구하려 들고, 나라를 희생해서라도 세계를 구하려 들고, 또 세계를 희생시켜서라도 인류를 구하는 것이었으며 어떤 경우든 교파가 우선일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그에게 사이비나 이단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선택한 선교의 길
나비가 되기 위한 애벌레의 인내와 끈기로, 미국 정신혁명의 아이콘이 된 레버런 문

강연에는 종파를 초월한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였습니다. 설교 중에 “여기 장로교 있는가?” 하고 물으면 “여기요, 여기!” 하며 손을 드는 청년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또 “가톨릭도 있나?” 하고 물어도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번쩍 들었습니다. “남침례교는?” 하고 물으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요, 저요!” 하는지요. 내가 “자기 종교 놔두고 왜 나에게 설교를 들으러 오는 거요? 어서들 돌아가요. 돌아가서 자기 교회에 가서 말씀 들어” 하면 와! 와! 하고 탄성을 질러댔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장로교며 침례교의 지도자들이 교회 청년들을 이끌고 찾아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레버런 문’은 미국 사회의 정신 혁명을 뜻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955년 광복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과의 국교도 수립되기 전 문선명 총재는 일본에서의 선교를 위해 선교사를 파견하기로 결심한다. 국교가 없었으니 일본 비자를 받는 것도 불가능했고 밀항을 통한 불법 입국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일본으로 파견된 최봉춘은 불법 입국으로 두 번이나 추방당하고 세 번째 체포된 상황에서 다시 극적인 탈출을 감행하며 일본에 정착했고, 그렇게 극적으로 일본에서의 선교활동은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국가에서도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 시절, 공산권 국가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소련에서는 선교사들이 KGB에 발각되어 강제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차우세스쿠의 독재정치가 극에 달했던 루마니아에서는 비밀경찰 에게 미행을 당하고 전화를 도청당하는 일도 예사였다. 1973년에는 30여 명이 한꺼번에 검거되어 그중 한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에 날개를 달고 나비가 되는 모습을 빗대어 나비작전이라고 불린 공산권 국가에서의 선교활동은 큰 아픔을 감내한 만큼 커다란 나비가 되어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청교도 정신을 근간으로 한 미국에서의 선교활동도 시작되었다. 처음 미국인들이 문 총재의 강연에 보인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제 겨우 전쟁의 굶주림 속에서 살아난 한국이라는 보잘것없는 나라에서 온 종교 지도자가 어디서 감히 미국을 상대로 회개하라는 소리를 하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총재의 순회강연은 날이 갈수록 화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고 우주와 인생에 관한 근본원리를 비롯하여 미국의 건국정신을 일깨우는 강연 내용이 퇴폐와 나태의 나락으로 빠져들던 미국인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인들은 문 총재의 강연을 통해 의식 혁명을 이루었던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파더 문(Father Moon) 혹은 레버런 문(Reverened Moon) 이라고 부르며 문 총재를 따르기 시작했고 그의 강연에는 종파를 초월한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였들었다.
마침내 1976년 9월 18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권행진을 벌이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대규모 집회를 열었던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30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성공적인 집회를 이끌게 된다. 머리카락 색깔이며 얼굴색이 모두 제각각인,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 보내신 모든 인종이 다 모인 정말 세계적인 집회였다. 그해 연말, 『뉴스위크』는 문선명 총재를 1976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철의장벽 크레믈린의 고르바초프도, 지구의 마지막 붉은 광장 김일성도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평화와 사랑 앞에서는 모두가 마음의 문을 열 수밖에 없었던 드라마보다 가슴 뛰는 이야기!

지금이야 다들 평화통일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때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무서워 감히 평화통일이란 말을 사용하기조차 겁나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줄곧 평화통일을 주장해왔습니다. 지금도 누가 “어떻게 해야 한반도가 통일됩니까?” 하고 물으면 내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남한 사람이 남한보다 더 북한을 사랑하고, 북한 사람이 북한보다 더 남한을 사랑하면 오늘이라도 한반도는 통일됩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지구의 화약고 중동에 전운이 감돌자 문선명 총재는 측근을 통해 각 종단의 지도자들을 모아 중동회담을 제안했다.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문 총재는 중동에 전운이 감돌 때마다 열두 차례나 목숨을 걸고 팔레스타인의 지도자인 아라파트를 직접 만나 중동평화를 위해 중재에 나섰다.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건 그의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종교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국가 소련과 북한에까지 넘어가 평화의 종교를 설파하며 평화외교관으로서의 막중한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냉전시대가 막바지로 치닫던 1990년 문 총재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고르바초프를 만나 진정한 개혁을 성공하려면 종교의 문을 열어야 한다며 그를 설득했다. 그리고 한국과 수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 결과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은 86년 만에 국교를 맺게 되었다. 소련의 붕괴를 직감한 문 총재는 소련 붕괴 이후 한반도 평화를 대비하기 위해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물론 김일성과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 총재를 국제적인 승공운동의 괴수로만 알고 있던 북한에서는 문 총재의 방북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지만 수차례에 걸친 설득 끝에 1991년 11월 김일성 주석의 초대를 받고 북한을 방문하여 한반도 비핵화선언과 국제 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협정에 조인할 것을 건의한다. 문 총재가 일주일의 여정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자 연형묵 총리를 수반으로 한 북한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여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체결되었고 이듬해 1월 30일 북한이 IAEA의 핵사찰협정에 조인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이후 1994년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에도 북한은 일체의 외국 조문객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문 총재만은 예외였다. 한국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배치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문 총재는 조문사절을 보냈고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는 신의가 바탕이 되자 김정일 위원장도 마음을 열고 조문사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처럼 제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하는 나라라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바로 문 총재의 지론이며 지금까지 그가 실행에 옮긴 사랑과 평화의 원칙이다. 무차별적인 폭력집단이라 낙인찍힌 팔레스타인인들도, 국제적으로 교류의 문을 닫아 건 북한도 모두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고 대화한다면 그들 역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온다는 사실을 문 총재는 목숨을 건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직접 보여준 것이다.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세계를 품고 마음속의 국경을 지워버린 세계인이 되어

종교와 인종을 한데 어우르는 평화세계를 만들기 위한 길은 한없이 고단했습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치이고 때로는 능력에 치이는 일이 수없이 많았지만 나는 그 사명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나와 함께하는 식구들이나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 비명을 지를 때면 차라리 그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가다가 싫으면 돌아설 수도 있고 하다 하다 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나 나는 그럴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고 그들을 향해 하소연한 적도 있었습니다.

문 총재는 지금도 전세계의 기아와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이르와 콩고, 가이아나, 파라과이, 브라질 등에 학교를 세우고 농업과 공업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인류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델로 브라질 자르딘 지역에 새소망 농장을 만들었다. 이곳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함께 설립해 브라질 사람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 누구나 새소망 농장에 와서 일하고 먹고 배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다가 솟아올라 육지가 된 탓에 아직도 짠물이 올라오는 파라과이의 차코에 직접 들어가 피폐한 주민들의 삶에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들에게 직접 낚시를 가르쳐주고 그렇게 잡은 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강가에 냉동 창고까지 지어주었다. 또한 학교를 세워 이 지역 사람들을 교육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었다.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지이며 하나님이 지은 창조물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브라질의 판타날 지역을 보전하기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지금 세계가 한몸이 되는 새로운 역사를 꿈꾼다. 전세계를 하나로 이어줄 국제평화고속도로가 그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해저터널로 연결하고 러시아와 북미 대륙을 가르는 베링해협에 다리를 놓아 지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아프리카의 희망봉에서 칠레의 산티아고까지, 그리고 영국의 런던에서 미국의 뉴욕까지 전 세계 어느 곳이듯 막힘없이 달려갈 수 있는 글로벌 통합 프로젝트를 그는 계획하고 있다. 금전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국가 간의 미묘한 갈등까지 모두 해결해야 하니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은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 역시 누구도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매번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세계평화를 위한 길을 걸어왔다. 이처럼 지금 세계의 인적자원과 지하자원의 불균형을 조절해 세계적인 부의 평준화를 이루어줄 이 프로젝트 역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단언한다. 그리고 국제평화고속도로라는 물리적 소통의 공간을 넘어서 초종교 지도자들의 지혜를 합한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말한다. 뜻을 세우는 데 있어 좁은 국토을 탓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국경을 넘어 전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할 일을 찾으라고, 그리고 단순히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람들과 사랑과 평화를 나누는 데 힘쓰라고 . 그는 그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거듭나기를 당부하고 있다.

책만 보는 바보

1. 역사 속 인물을 바로 우리 곁으로 불러내기
역사(歷史)라는 오래된 문자[歷지낼 력]를 들여다봅니다. 자연과 사람의 노동이 어우러져 자라는 곡식[벼 화禾+禾]이 심어져 있고,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의 발자국[止]도 보입니다. 틈나는 대로 둘러보며 가꾸는 사람의 애타는 마음도 담겨 있는 듯합니다. 울타리[?]도 둘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역사’라는 추상적인 단어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달리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발자국 하나하나가 그 위에 겹쳐지면서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역사는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의 사람들입니다. 흔히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고 불리는, 우리에게는 그저 활자로만 다가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생애 동안 그들도 분명, 우리처럼 온갖 감정,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희망과 좌절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책, 특히 어린이 책에 씌어진 그들 혹은 역사 속의 인물들에게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일이라 하여 시제는 과거형이요, 설명 위주의 서술은 건조하기만 합니다. 그들은 우리와는 거리를 둔 채, 그저 책 속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그들을 우리 곁으로, 숨쉬는 인간으로 불러낼 수 없을까? 이 책《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의 기획, 집필은 이런 아쉬움과 바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찍이 이덕무에 매료되어 그의 저술은 물론 그와 관련된 글을 샅샅이 찾아 읽어 온 이 책의 저자는 이덕무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 자처하며 평생 책을 벗 삼아 살았던 이덕무,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가 되어 그의 벗들과 그 시대를 불러내 봅니다.

1.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이덕무: 조선 정조 때의 문인, 실학자. 자는 무관(懋官), 호는 청장관(靑莊館) ?형암(炯庵)·아정(雅亭). 서얼 출신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박학다식하고 시문에 능하여 젊어서부터 많은 저술을 남겼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과 사귀었으며, 중국에까지 알려진 사가시인(四家詩人: 이덕무,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중의 한 사람이다. (…)

이덕무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문에 빠지지 않는 말이 ‘서자(얼) 출신 문인’ ‘박학다식’입니다. 이덕무는 왕족의 후손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서자였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고단한 삶이 시작됩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집안 형편상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게 되면서, 더욱 말이 없고 조용한, 오직 책 속에서 책과 대화하며 자랍니다.
그에게 책은 단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듣고 보고 느끼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세계였습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어디에도 낄 데가 없었던 서자 신분의 그가 마음을 둘 곳은 책밖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이덕무가 책과 벗하고, 책 속의 사람들과 벗하는 나날들은 오래도록 계속됩니다. 책이야말로 그의 으뜸가는 벗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이덕무는 백탑(원각사지 십층석탑, 지금의 탑골공원 안에 있음)이 있는 대사동(지금의 인사동)으로 이사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그는 비로소 평생지기인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들을 사귀게 됩니다.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이서구를 제외하면 모두 서자 출신으로, 힘든 세월을 견디는 데 서로 의지가 되어 준 벗들입니다. 백탑 아래 동네에는 이들 외에도 서자 출신 문인들이 많이 모여 살거나 모이기도 했는데, 그들을 사람들은 ‘백탑파(白塔派)’라 불렀습니다.
이덕무는 백탑 아래서 벗들뿐만 아니라, 더 큰 세계로 눈을 뜨게 해준 스승격인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과도 깊은 친분을 맺게 됩니다. 홍대용과 박지원, 그리고 이서구는 명문가의 사대부로, 당시 이들의 사귐은 신분과 처지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것으로, 무엇보다 사람의 성품을 먼저 보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느 선비들처럼 유교경전만을 파고들어봐야 벼슬에 나아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기에,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주변의 사물이나 자연, 자신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에 많이 쏠립니다. 이러한 시선은 자연스레 문학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각자의 개성과 감수성이 뛰어난 시와 문장들을 많이 남기고, 《백탑청연집(白塔淸緣集)》과 같은 문집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이덕무와 벗들이었기에, 완고한 유교사회의 모순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시작하는 조선 후기 사회 현실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문학청년에서 현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새롭게 바꾸어 가려는 개혁적인 사상가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 책은 이러한 그들의 행로를 찬찬히 따라갑니다. 이덕무처럼 섬세한 저자의 눈길이 그들의 생각이 여물어가는 과정을 좇습니다.

1. 실학자들을 마음으로 이해하기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모두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 불립니다. 이 책에서는 굳이 ‘실학’이란 말을 쓰지는 않지만, 이덕무와 벗들의 생각을 통해 실학이 생겨난 배경, 실학자라 불린 사람들이 지닌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책벌레 이덕무와 실학은 어딘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실학을 그저 편리함이나 효율성만을 얻으려는 실용이란 말로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백과사전처럼 해박한 이덕무의 지식은 풍부한 고증을 거쳐 엄격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그 또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에 입각한 실학적인 학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 하였지만, 이덕무 그리고 그의 벗들은 결코 책 속에서만 머무르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 불리지만, 이들이 몰두했던 실학(實學)이란 말에서 그저 편리함이나 효율성만을 떠올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하고 돌아와 봐야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못했던 조선 백성들의 사는 모습, 그것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젊은 그들의 새로운 학문은 비롯되었으니까요. 그들 역시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 보았고, 날 때부터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껴왔기에, 그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개혁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이들을 알고부터 나는 실학이란 말을 대할 때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뜨거운 분노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머리말>에서)

‘실학’은 사색이나 논변 자체를 위한 사대부의 학문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갖 모순과 문제를 해명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학문으로의 커다란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은 이제까지 내려오는 학문과 제도의 권위에 따르지 않고 현실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개혁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젊은 그들에 의해 세상은 새로운 방향으로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그러한 시대의 흐름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사회의 문제가 다양한 만큼, 이들이 관심을 기울인 분야도 조선의 역사, 농업, 상공업, 관료제 개혁 등 다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무슨 무슨 학파로 분류되는 정형화된 실학자들로서 이덕무와 그의 벗들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들 개개인의 가슴속에 담긴 생각을 먼저 헤아리며, 세상과 인간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과 태도에 눈길을 보냅니다. 예컨대 중상학파, 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박제가가 무엇을 붙들고 고민하였던가, 저 유명한《북학의》를 쓰기까지의 그의 가슴앓이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잊혀진 발해의 역사를 복원해내고자 하는 유득공의 충정과 잰 발걸음의 여정을 함께 좇아가 보기도 합니다.

1. 사실성과 상상력의 탄탄한 결합으로 이뤄낸 옛사람과의 독특한 만남
이 책의 저자는, 이덕무가 쓴 짧은 자서전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접하고 그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그의 저술은 물론 관련된 글을 두루 찾아보게 되었고, 그러한 관심은 이덕무와 친하게 지낸 인물들과 그 시대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두루 섭렵한 역사적 자료들과 책 속의 사실들에 기반하여, 먼저 집필을 위한 연대표와 이들 서로간의 관계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남긴 글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행동, 다른 벗들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각 인물의 성격을 짐작하여 그려 보았습니다.
사실을 얼개로 상상의 창을 내어 이덕무의 시대로 들어간 저자는 이덕무의 마음으로 그의 벗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이며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이덕무의 섬세한 눈길, 혹은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으로 빚어낸 인물들은 우리가 익히 알아온 모습과는 다릅니다. 예컨대 그가 가장 아끼는 벗 박제가는 언뜻 보기에는 대범해 보이지만, 엷은 녹색 빛이 도는 눈동자가 무척 슬퍼 보이는 인물입니다. 성미가 급하고 괄괄했다는 연암 박지원은, 웃을 때마다 무성한 수염이 위로 활짝 퍼지는 모습이 아이처럼 천진해 보입니다. 매사에 치밀하고 날카로운 정조 임금도 매서운 눈매 너머 따뜻함과 슬픔을 내비칩니다.
이렇듯 이덕무와 그의 벗들 그리고 그 시대상이 마치 지금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저자의 상상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과의 균형을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기에, 더욱 생동감 있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역사 속 인물, 옛사람들을 우리 앞에 복원해 내는 독특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1. 이어지는 시간, 역사는 현재형
근자에 청계천이 옛 모습을 찾았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곳의 22개의 다리를 밟으며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듣는 걸까요? 혹 2백여 년 전 달 밝은 밤, 바로 그곳에서 울리던 가야금 소리, 노랫소리가 들리지는 않을는지요. 이덕무와 그의 벗들과 스승이 모여 벌리던 수표교 위의 음악회,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을는지요.
종로 2가 탑골 공원의 백탑은 어떻습니까? 젊은 날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쉼터였던 백탑, 지금은 도심 한 귀퉁이, 커다란 유리장 안에 갇혀 있는 탑에서 그들의 웃음과 한숨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는지요.
역사가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건 이런 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그때도 분명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발견 말입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다음 세대와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그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다면 누구나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와 지금의 시차를 넘어, 양반과 서자라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의 차이를 넘어, 나이가 많고 적음의 차이를 넘어.
우리도 그들과 벗이 될 수 있을까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그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가 진심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시간 속에 스며든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또한 우리의 마음을 나눈다면.
이 책은 저 먼 2백여 년 전의 외로운 선비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당시 그들의 생각과 모습을 현재형으로 보여 줍니다. 하천이 계속 흐르듯, 인간의 삶은 계속되고 그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다시 만나리라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4개의 통장

샐러리맨부터 백억 부자까지
1000여 명의 인생을 바꾼 돈 관리의 비밀

‘푼돈이 저절로 목돈이 되는 4개 통장 시스템을 마련하라!’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히 저축하고, 그 돈을 지속적으로 좋은 자산에 투자해야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모두 돈을 버는 데에만 매달려 있고, 이미 들어온 돈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철저하게 돈의 출입을 통제하고 일사불란하게 돈을 불려나가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방법은 있다. [4개의 통장]이 제시하는 ‘자동 돈 관리 시스템’이라면 가능하다. 통장 4개를 이용해 돈의 용도를 구분하여 자동으로 돈이 쌓이고 불어나게 하는 통장 관리의 기술. 소중하게 번 돈을 모으고 묶고 굴리며 진짜 부자의 길을 걷게 하는, 의지 약한 당신을 위한 최고의 비법이다.

불황에도 끄떡없는 저축형 인간
저자가 강의와 상담을 통해 만난 사람은 1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직업과 나이, 재산과 소득이 천차만별이고 희망하는 부富의 수준이 서로 달랐지만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다. 직장과 일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고민하지만, 자신의 돈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저축이다. 저축을 잘 하기 위해서는 내 돈을 어떤 목적으로 얼마만큼 지출했는지, 불필요하게 많은 지출을 하지는 않았는지, 미래를 위해서는 얼마를 투자했는지 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관찰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치 돈이 인생의 전부인 양 오직 그것에만 매달려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저자는,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철저하게 돈의 출입을 통제하고 일사불란하게 돈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자동 돈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지출 관리, 예비자금 관리, 투자 관리라는 3단계 준비를 거쳐 4개의 통장으로 용도에 맞추어 내 돈의 흐름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자동화된 돈 관리 시스템
저자는 3단계 돈 관리법과 4개의 통장 이용법을 꼼꼼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선 3단계 돈 관리법이란 지출을 통제하는 지출 관리, 예비자금을 보유하는 예비자금 관리, 장기간 투자하는 투자 관리의 3가지 지침을 단계별로 실행하는 것이다. ‘저축하고, 대비한 후, 투자하라!’로 요약할 수 있는 간단한 원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관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지출을 통제하라는 말은 무조건 아끼고, 돈을 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필수적인 지출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낭비요인을 제거하고, 매월 일정한 돈으로 살아가는 습관을 가지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면 충분히 저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예비자금을 보유하라는 말은 예상치 못한 일로 평소보다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것에 대비해 일종의 비상자금을 확보하라는 뜻이다. 예비자금 없이 투자를 하다가 뜻하지 않게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투자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은 뻔하다.
장기간 투자하라는 말은 복리 투자를 지속하라는 뜻이다. 돈 관리의 최종 목적은 부자가 되는 것이며, 부자가 되려면 복리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따라서 지출을 통제하고, 예비자금을 보유하는 일도 결국은 부자가 되기 위해 장기간 투자하라는 마지막 단계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이걸 제대로 실천하는 돈 관리의 자동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의 용도를 구분한 후 각 용도에 따라 다르게 사용할 4개의 통장을 준비해야 한다.
급여 수령 및 고정 지출 관리용인 급여 통장, 변동 지출 관리용인 소비 통장, 예비 자금 관리용인 예비 통장 그리고 투자 관리를 위한 투자 통장이다. 이는 특정 금융상품의 명칭이 아니라 각 통장에 용도별로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급여 통장에 매월 급여가 입금된 후 월말[또는 특정일]까지 각종 고정 지출이 납부 되도록 한다. 이후 생활비용[변동 지출]으로 소비할 일정한 금액의 돈이 소비 통장으로 자동이체 되도록 한 후 남은 돈을 전부 투자 통장으로 이체한다. 이렇게 하면 매월 얼마의 돈을 벌어서 얼마를 지출하고, 얼마를 저축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투자 통장에 입금된 돈은 예비 자금을 확보한 후 다양한 금융 상품에 투자하면 된다. 이것이 돈 관리 시스템의 기본적인 형태이다.

국내 최고 돈 관리 코칭 전문가의 실천 재테크 노하우
모두가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누구나 부자가 되지는 못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뒤쳐질 것 같은 불안감에 잘 알지도 모르는 대상에 투자를 하고, 좀 더 빨리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에 목숨과도 같은 돈을 투기에 내던진다. 그리고는 부자 되기 꿈에서 오히려 더 멀어진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돈에 관한 결정은 그것이 투자든 소비든 남에게 이끌리지 말고 본인이 직접 해야 하고, 결정에 따른 결과 역시 자신의 책임입니다.’
저자는 부자가 되기 원한다면 기본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기본은 바로 ‘저축’으로 하는 돈 관리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돈을 벌어야지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돈 관리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저축’이 주는 의미를 깨닫고,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가 부자로 한걸음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나만의 해결점’을 찾는 결정적인 기초 체력을 키울 수 있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이자 ‘돈 관리 코칭 전문가’인 저자 고경호는 푸르덴셜생명보험과 우리투자증권에서 근무하면서 돈 관리*투자*보험 등에 관한 재무상담과 강의 활동을 했으며, 지금은 알리안츠생명보험 교육지원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연을 쫓는 아이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역사를 배경으로 한 따뜻한 성장소설 『연을 쫓는 아이』. 흥미진진하지만 교육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충격적이기도 한 이 소설은 탈레반 세력이 군림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한가운데로 거침없이 우리를 데려가준다.

아프가니스탄의 하늘에 색색의 연이 춤추는 날, 소년 아미르의 마음에 죄의식이 자리한다. 아미르는 형제 같은 하인 하산이 시달리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다리가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서 그를 억지로 멀리했다.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아미르의 모습은 오히려 건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자기 자신을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한다.

미국 망명 생활 속에서 바바는 주유소를 운영하며 아미르를 공부시키고, 망명한 아프가니스탄 장군의 딸과 결혼한 아미르는 소설가로 성공한다. 몇 년이 지난 후 삶에 안정을 찾고 있을 때 아미르는 파키스탄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잘못을 속죄할 기회를 갖게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가책으로 괴로워하고, 죄를 갚아야 함에 근심하던 아미르는 마침내 탈레반 세력하의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온다. 그때 그는 끔찍한 비밀을 알게 되는데…. 굴절된 우정, 비밀과 배반, 양심의 가책과 보상이 복잡하게 얽힌 한 편의 드라마가 아프가니스탄의 격동의 역사를 축으로 그려진다.

잠자기 전 30분

‘인간은 습관의 노예다’
세계적인 자기계발 전문가 오그 만디노Og Mandino는 자신의 저서 『위대한 상인의 비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누구도 이 명령자에게는 저항할 수 없다. 좋은 습관을 만들어 스스로 그 노예가 되라’고 권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 가운데 무의식에 의한 행동이 약 80%에 이른다고 하며, 일부 과학자들은 무려 95%에 달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무의식에 의한 행동을 습관을 통해 바꾸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변화하는 것은 상당히 힘이 들지만, 좋은 습관으로 몸에 익히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습관 중에서도 특히 ‘잠자기 전 30분’의 습관에 주목하고 있다. 다양한 학습이론과 수면과학을 통해 ‘잠자기 전 30분’이 어떤 시간이며, 또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1. 잠자기 전 30분은 하루 중 가장 효율적인 시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가장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깨어있는 시간을 아무리 효율화한다고 해도 늘어나는 시간은 1~2시간이 고작이다. 그에 반해 사람들의 수면시간은 하루 평균 6~8시간에 달한다. 인생의 1/3에 해당하는 시간인 것이다. 저자는 잠자는 시간을 사람들에게 남겨진 미개척의 프런티어 타임이라고 보고, 그 시간을 활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학습심리학에는 먼저 받아들인 정보가 다음에 취한 정보에 의해 기억이 방해받는 현상인 ‘역향억제’라는 개념이 있다. 예를 들면 뒤에 공부한 국어가 앞서 공부한 영어의 기억을 방해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공부한 후에 다른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잠을 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공부도 업무도 잠자기 전 30분을 활용하면 하루 중의 어떤 시간보다 더 효율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 효과를 입증한 ‘잠자기 전 30분’의 활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잠자기 전 30분의 리포트 작성법, 독서법, 인터넷 활용법뿐만 아니라 내일을 위한 쾌적한 수면법 등 ‘잠자기 전 30분’에 꼭 필요한 새로운 습관들을 소개한다. 단순히 잠을 준비하는 시간이 어떻게 내일이 바뀌는 소중한 시간으로 변화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2. 하루의 시작은 잠자기 전 30분부터
이 책에서 권하는 습관은 크게 두 가지다.
1) ‘잠자기 전 30분’에 씨를 뿌리는 습관
2) ‘아침 30분’에 수확하는 습관
일반적으로 잠은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한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뇌는 잠을 자는 동안에 기억을 강화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번득임’을 가져오고, 그 부수적인 역할로 꿈을 꾸거나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뇌의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즉, 하루의 마지막에 잠이라는 휴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루의 출발선에 잠이라고 하는 뇌의 준비시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잠자기 전 30분을 바꿔서 잠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활용한다. 그리고 소중한 아침 시간을 활용하여 충실한 하루를 만든다. 결국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의 습관으로 하루를 바꾸고 인생을 바꾸는 것이다.

3. 잠을 자면서 꿈을 이룬다
최신 뇌과학에 따르면 잠은 ‘정보의 정리’와 ‘기억의 강화’ 기능을 갖고 있다. 잠을 자면서 일상생활에서 받아들인 방대한 양의 정보 중에 장기 기억으로 보존할 것은 보존하고, 삭제해도 상관없는 것은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잠자기 전에 상상한 정보는 그대로 뇌로 보내져서 잠재의식 속에 새겨진다. 따라서 장래 이렇게 되고 싶다는 자신의 미래상을 명확히 상상할 수 있다면 뇌는 그것이 현실인 것처럼 반응하고 그 정보를 입력하게 된다. 그 다음 잠의 과정 중에 포함되어 정보정리, 기억강화를 거쳐 장기기억으로 보존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의식중에 각인된 자신의 미래상을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한마디로 잠을 자면서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 잠자기 전 30분 새로운 습관의 힘
- 아침이 달라진다
-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 극적으로 시간이 늘어난다
- ‘되고 싶은 나’를 실현할 수 있다